Chapter 1. 금성슈퍼
새벽의 ‘불청객’

새벽 2시. 또 ‘그분’이 찾아왔다. 가슴이 조이고 숨이 가빠온다. 이달 들어서만 7번째. 통증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뒤통수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자다 깬 남편이 등을 쓸어주지만 소용이 없다. 끙끙대기를 몇 분. 서서히 통증이 사그라졌다. ‘또 언제 찾아올까’ 쉽사리 잠들 수 없다.

김옥화(64·여) 씨에게 정체 모를 고통이 찾아온 건 4년 전. 장례식장에서 주방 일을 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숨 쉬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지하 공기가 안 좋아서 그러려니 했다. 몇 차례 반복되자 심장 쪽 이상인 줄 알았다. 병원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폐 엑스레이(X-ray) 사진도 깨끗했다.
“집 앞 온천천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숨이 차더니, 나중엔 음식을 조금 많이 먹거나 계단만 올라가도 숨이 차더라고요. 지금은 작은 산도 못 올라가요. 숨이 차서….”
숨이 가빠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기 일쑤. 결국 7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언제부턴가 통증도 찾아왔다. 왼쪽 가슴 아래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느낌. 처음엔 담에 걸린 줄 알았다. 파스도 붙여봤지만 소용없었다. 심할 땐 가슴 전체가 확 조여 왔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할 때쯤 서서히 통증이 풀렸다.
정체 모를 병마와 싸우기를 2년여. 2012년 11월 딸아이(39) 집으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들었다. 연신초등학교 졸업생은 석면 피해가 의심되니 가족 모두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부산시 연제구 연산1동 ‘제일화학’. 국내에서 가장 큰 석면방직공장으로 연신초등학교와는 길 하나 사이였다.

아들, 딸, 남편과 함께 온 가족이 양산부산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에서 검사를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 씨만 이상소견이 나왔다. 정밀검사 후 지난해 4월 24일 ‘석면폐증 2급’ 판정을 받았다.
“교수님, 무슨 약을 먹으면 되나요?”
김 씨는 곧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 세계 어디에도 석면질환 치료약은 없기 때문이다.


“교수님,
무슨 약을 먹으면 되나요?

김 씨는 곧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

김 씨 가족은 1985년 봄 제일화학 마을 주민이 됐다. 조그만 구멍가게나 열어볼까 싶어 수소문하고 신문을 뒤적이다 발견한 곳. 제일화학에서 300m 떨어진 슈퍼가 딸린 단층집이었다. 폭 8m 도로를 낀 사거리 모퉁이라 왕래가 많았다. 집과 슈퍼를 인수한 뒤 ‘금성슈퍼’ 간판을 내걸었다.

김 씨네 슈퍼는 시골 우물가처럼 붐볐다. 제일화학 직원들도 단골이었다. 먼지 묻은 회색 작업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평상에 앉아 술잔을 걸쳤다.
“직원들끼리 술 한잔 먹으면 상말도 쓰고 불평불만을 얘기하곤 했는데, ‘석면을 만드는 공장인데 몸에 나쁘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슈퍼 앞으로 지나다녔다. 덮개를 덮어 안의 내용물은 뭔지 알 수 없었다.

금성슈퍼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출근길 담배를 사러 오는 손님을 맞아야 했다. 새벽 5시 반 셔터를 올리고 마당에 나가면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김 씨는 이웃보다 더 일찍 더 많이 매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1992년 제일화학이 이전하고 얼마 후 김 씨도 슈퍼를 접고 다른 동네로 이사했다. 아들·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가정을 꾸렸다. 이제 여생을 안락하게 보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김 씨 부부.

“지금껏 쉬지 않고 일만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힘들 때마다 ‘어느 정도 해놓고 나면 등산도 가고 여행도 다니자’며 서로 북돋우곤 했는데. 제 건강 때문에 이젠 영영 여행을 갈 수 없게 됐다며 남편이 눈물을 흘리곤 해요.”
김 씨 눈가에 이슬이, 입가엔 미소가 스친다. 남편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택시기사 일을 시작했다. 눈이 어둡고 허리도 아파 몇 년 전 그만둔 일이지만 생활비를 벌려면 어쩔 수 없다. 사납금을 떼고 집에 가져오는 수입은 70만 원 남짓. 정부에서는 월 50만 원 안팎의 구제급여가 나온다. 그나마 2년이 지나면 끊긴다.


제일화학 직원들도 단골이었다.
먼지 묻은 회색 작업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평상에 앉아
술잔을 걸쳤다.

금성슈퍼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새벽 5시 반 셔터를 올리고
마당에 나가면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제일화학 주민피해자 지도]

Chapter 2. 제일화학
“석면이 솜인 줄...이불 삼아 덮고 잤어요”

그는 자랑스러운 제일화학 직원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박영구(59) 씨는 누나의 뒤를 따라 1971년 초 제일화학에 취직했다. 당시 제일화학은 국내 석면방직공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수도 높은 편이었다. 부러움 속에 회사 동료인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처음에는 석면에서 직접 실을 뽑아내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기계 관리 업무를 맡았다.
“기계가 돌아가면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석면 먼지가 심하게 흩날렸습니다. 바닥에는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석면 가루가 쌓였죠.”

박 씨처럼 많은 순박한 젊은이들이 제일화학에서 청춘을 불살랐다. 하지만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석면의 유해성에 대해 회사에서도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석면 가루가 눈처럼 쌓인 작업 현장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야식을 먹었죠. 휴식시간에는 석면포를 이불 삼아 덮고 자기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박 씨는 1978년까지 제일화학에서 일했다. 아내 역시 1978년까지 ‘청석면 라인’에서 일했다. 둘째를 낳은 1985년 아내는 자주 마른기침을 하고 숨가빠했다. 처음에는 가파른 길을 오를 때 숨차 하다가 나중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을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파했다. 진통제로 버티고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10년여의 지옥 같은 병치레 끝에 아내는 고작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아내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석면 때문에 죽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박 씨는 2005년 악성중피종에 걸린 회사 동료를 통해 석면의 존재를 알게 됐다. 2007년 박 씨 역시 석면폐증 진단을 받았다. 그해 박 씨처럼 석면질환으로 고통 받는 회사 동료들을 수소문해 ‘석면피해자와 가족협회’를 꾸렸다.
“모임 회원들이 1년에 한두 명씩 석면질환으로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지난해 2명, 올해만 벌써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부분 이제 50대 초중반인 분들입니다.”
청춘을 석면가루를 뒤집어쓴 채 보내야 했던 이들은, 이제 시한폭탄 같은 석면섬유를 가슴 속에 품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바닥에는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석면 가루가 쌓였죠”

“아내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석면 때문에 죽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교문 앞 석면공장

부산 연제구 연산동 온천천. 한낮의 햇살이 수면 위에 금가루를 뿌린다. 꽃중년들이 온천천변을 따라 여유로운 걸음을 옮기고, 그 옆을 자전거가 지나간다. 온천천을 뒷마당 삼아 아늑하게 자리 잡은 연신초등학교. 뒷마당을 뛰어다니며 재잘대던 아이들이 종소리를 따라 학교로 들어간다.
30년 전 이곳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주민들도 온천천에서 산책을 즐겼고, 학생들은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지금과 다른 게 있다면 학교 바로 앞에 석면공장이 있었다는 것뿐. 교문을 나와 열 걸음만 옮기면 제일화학이 서 있었다.

현재 공장부지엔 20층짜리 아파트 2개 동이 들어섰다. 1986년 연산동으로 이사해 제일화학 앞에 터를 잡은 이신열(70) 씨는 한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는 공장이 있던 시절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지금 아파트 입구가 바로 공장 입구였어요. 아파트 자리 그대로 공장 자리였다고 보시면 돼요.”
아파트 정문 바로 앞 마트가 들어선 4층짜리 건물도 이전에는 2층짜리 공장 기숙사였다.

당시 마을은 전형적인 주택가의 모습이었다. 퇴근길 이 씨가 동네에 도착할 때면, 공장 근로자들은 모두 퇴근해 한적했다.
평화로운 저녁과 달리 아침만 되면 이 씨는 온천천 건너 연탄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가루를 치우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정작 코앞의 제일화학에서 나오는 석면분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못 썼다.
“석면가루는 미처 인지를 못 했어요. 검은 연탄가루는 눈에 보이니까. 석면이 더 가벼우니까 더 멀리 날아가지 않았을까요?”

‘보이지 않는 살인마’는 바람에 날려, 공기와 뒤섞여, 이 씨 같은 마을 주민과 학생들의 폐를 잠식해 들어갔다.
이 씨도 얼마 전 부산시에서 실시하는 석면질환 건강검진을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눈에 보이는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이나 한 달 정도 가슴이 묵직하고, 때로는 쿡쿡 찌르는 증상이 이어지곤 한다. 제발 나는 아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지난 2009년 환경부가 제일화학이 있던 연산동 일원을 조사한 결과 이 지역에서 잔류 석면은 검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제일화학이 이전한 이후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석면 피해로부터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환경부와 전문가들의 견해다.


학교 바로 앞에 석면공장...
교문을 나와 열 걸음만 옮기면
제일화학이 서 있었다.

때로는 쿡쿡 찌르는 증상이
이어지곤 한다.
제발 나는 아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Chapter 3. 석면도시
왜 부산

부산을 수식하는 또 다른 이름 ‘석면도시’.
전국의 옛 석면공장 40여 곳 중 30곳 이상, 특히 분진이 많이 발생하는 석면방직공장은 14곳 중 9곳이 부산에 있었다.
개항기 때부터 신문물(新文物)이 들어오던 관문. 석면 역시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다.

제일화학은 일본에서 석면제품을 생산하던 한 기업의 합작회사로 문을 열었다. 일부 사무직을 포함해 공장 근로자만 300명. 연간 400~500t의 석면 원자재를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수입해, 석면포를 비롯한 포장용 석면제품을 생산했다.

석면포 외에도 천장재(석면텍스)와 지붕재(슬레이트), 개스킷과 브레이크 라이닝 등 각종 석면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1970년대 잇따라 부산에 둥지를 텄다.
현재까지 부산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석면공장은 29곳. 이 가운데 주소지는 같은데 이름만 바뀐 업체들을 제외하면 22곳이 남는다.
제일화학이란 큰 형님 밑에 ‘사고뭉치’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형국이다.

2014년 6월 현재, 제일화학 주변에 살다 석면질환 판정을 받은 주민피해자는 32명. 이 가운데 9명은 이미 사망했다.
부산지역 석면공장 중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동양S&G(사상구 덕포동)의 주민피해자는 7명, 한일화학(사하구 장림동)도 5명이나 된다. 이외에도 성진물산(금정구 부곡동) 6명, 유니온공업 3명(사상구 학장동), 아주화학기계공업사 2명(기장군 정관면), 성진화학공업사 2명(금정구 금사동), 동기브레이크 1명(사하구 신평동), 한상석면 1명(사하구 다대동) 등 부산 전역에서 석면 주민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전국의 옛 석면공장
40여 곳 중 30곳 이상
석면방직공장은
14곳 중 9곳이 부산에...

제일화학이란 큰 형님 밑에
‘사고뭉치’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형국이다.

[석면공장 6곳 주민피해자 지도]
“공장 옆에 살았을 뿐인데...”

석면공장 1㎞ 이내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70대 남성. 석면질환 발병 후 치사율은 31.0%.
석면공장 노동자가 아닌 공장 인근 거주민으로서 석면질환 판정을 받은 이들의 대푯값이다. 취재팀이 지난 2009년 부산시의 첫 조사가 실시된 이후 2014년 6월까지 환경성 석면질환 판정을 받은 59명 중 구체적인 거주 이력이 확인된 42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다.

석면질환은 15~40년의 잠복기를 갖는다. 당장 발병하는 게 아니라 몸의 면역력이 본격적으로 떨어지는 50대 이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준다. 50대 이후 상승하던 석면질환 유병률은 70대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공장 주민피해자 정보 분석-
[성별 및 생존여부]
[발병당시 연령]

석면 공장과의 인접도 역시 중요 변수로 꼽혔다. 피해자의 73.8%가 반경 1㎞ 이내에 몰려 있었다. 면적 대비 인구비를 고려할 때 공장 반경 1㎞ 이내 거주자의 유병률은 1~2㎞ 거주자의 3배에 달했다.
젊은이들이라고 석면의 공습에서 비켜갈 수 없다. 경남 양산 거주 41세 남성은 지난해 석면폐증 2급 진단을 받았다. 이 남성은 1979년부터 6년간 제일화학과 불과 50m 떨어져 있던 연신초등학교를 다녔고, 집도 제일화학과 100m 거리에 있었다.

지난 2011년 악성중피종 확진 판정을 받은 34세 여성은 석면공장인 성진물산과 133m 떨어진 곳에서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이들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 나이부터 석면을 장기간 흡입해 통상적인 잠복기보다 빨리 질환으로 발전한 케이스다.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석면 공장 반경 2㎞ 밖에서 거주하다 석면 질환인 악성중피종에 걸려 사망한 피해자도 있었다. 예측할 수 없고, 그 실체가 손으로 잡히지도 않는다는 것이 석면의 진짜 공포다.

[석면질환]

[거주거리]
[노출시간]

Chapter 4. 시작일 뿐
침묵의 살인자

석면(石綿). 글자 그대로 돌과 솜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광물질이다. 영어 이름 ‘아스베스토스(Asbestos)’는 그리스어로 ‘불멸의 물질’이란 뜻이다.
불에 안 타고 전기도 안 통해 보온·단열 효과가 뛰어나다. 깃털 같은 감촉과 비단 같은 광택을 지녔지만 강철보다 강하다. ‘신이 내린 물질’, ‘마법의 물질’이란 별명을 갖게 된 이유다.

석면 섬유 한 가닥의 굵기는 머리카락의 5천 분의 1.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바늘처럼 생겼다. 날카롭고 작기 때문에 몸속에 침투하면 밖으로 배출이 잘 안 된다.
198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석면은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침투해 폐와 흉막에 질환을 일으킨다.

석면질환의 종류는 크게 4가지.
‘석면폐증’은 석면 입자가 폐포에 박혀 폐 조직이 딱딱해지는(섬유화) 질병이다.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해보면 ‘벌집 폐’ 모양이 나타난다.
석면에 심하게 노출될 경우 ‘폐암’도 발병하는데, 석면폐증에서 폐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석면입자가 폐포를 뚫고 나와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을 딱딱하게 만드는 병이 ‘흉막비후’. 이 흉막에 발생하는 암이 ‘악성중피종’이다.
현재까지 석면질환 치료약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깃털 같은 감촉
비단 같은 광택을 지녔지만
강철보다 강하다.

현재까지
석면질환 치료약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대발생의 시작?

국내 석면공장은 사라졌고, 석면제품 사용도 금지됐다. 하지만 여전히 석면은 현재진행형 문제다.
석면질환의 특징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뒤에 발병한다는 점이다. 석면폐증의 잠복기는 15~40년, 악성중피종은 20~35년이다.
국내에서 석면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시기는 1970~1990년대. 1990년을 기준으로 40년 뒤 석면질환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예상하면 2030년 ‘석면질환 대발생’이 도래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석면질환자 발생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부산시와 환경부가 석면공장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실시하고 있는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2012년 부산시민 1천507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이 중 5명(0.3%)이, 지난해에는 검진자 1천307명 중 32명(2.4%)이 석면질환 판정을 받았다. 1년 새 숫자로는 6배, 비율로는 8배나 늘어난 것이다.
제일화학만을 놓고 보면 상승곡선은 더 가파르다. 2012년 검진자의 0.1%(1081명 중 1명)가 석면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는데, 2013년에는 2.5%(827명 중 21명), 올해는 6월 현재 8.3%(24명 중 2명)로 그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부산지역 환경성 석면피해자 유병률-

[석면공장 22곳 전체]
[제일화학]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미래의 재앙’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공장 주변에 누가 얼마나 살았는지 기초적인 현황 파악부터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지만, 주민등록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각종 법과 제도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 강동묵 센터장(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은 “지금부터 석면 질환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악성중피종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는 무료검진 제도를 알고 찾아오는 주민들 위주로 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피해 가능성이 높은 주민들을 거꾸로 추적해 들어가는 ‘찾아가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석면폐증의 잠복기는
15~40년
악성중피종은
20~35년이다.

“피해 가능성이 높은 주민들을
거꾸로 추적해 들어가는
‘찾아가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Chapter 5. 부산 절반
반경 2㎞, 6개월 이상

-부산광역시 석면 관련 건강영향조사 지원에 관한 조례 제7조(지원대상)
‘업체 가동시기에 반경 2㎞ 안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하였거나 직장·학교 등에 재직 또는 재학했던 사람’


부산시와 환경부는 지난 2008년부터 일부 옛 석면공장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규모로 건강조사를 진행했다. 2012년 5월에는 조례를 제정하고 본격적으로 무료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부산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옛 석면 제조업체는 모두 22곳. 그중 정확한 가동기간을 아는 공장은 10곳에 불과하다.
위 조례 기준에 따라 건강영향조사를 받아야 하는 ‘잠재적 피해자(석면노출 인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부산시에 문의한 결과 ‘파악 불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취재팀은 직접 대상자 수를 알아보기로 했다. 통계청에서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총조사 중 1995년도 동별 인구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1995년은 국내에서 석면 사용이 최정점이었던 시기다. 지도 위에 석면공장을 점으로 찍고 반경 2㎞의 원을 그렸다. 원 안에 어떤 동이 몇 %나 포함되는지를 계산해 비율에 맞게 인구를 추산했다. 여기에 공장별로 중첩되는 지역의 인구는 다시 뺐다.

최종 집계된 숫자는 1,625,445.
무려 160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는 1995년 당시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인구만 계산한 수치다. 공장이 가동됐던 기간 이사를 오가거나 직장·학교에 다녔던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수는 훨씬 늘어난다. 반경 2㎞ 안에는 100개가 넘는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해 부산대와 부산교대, 동의대 등 대학교도 다수 포함돼 있다.
2010년 기준 부산 인구는 341만 5천 명(통계청 인구총조사). 최소한으로 잡아도 부산시민 2명 중 1명은 석면에 노출된 적이 있는 ‘잠재적 피해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이들이 모두 건강영향조사를 받을 경우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생겨날까. 올해 6월까지 검진을 받은 사람은 5천105명(0.3%)에 불과하다. 이 중 석면질환 판정자는 59명(사망자 포함)으로 유병률은 1%를 웃돈다. 162만 명이 모두 검진을 받을 경우 산술적으로 따지면 1만 6천 명의 피해자가 나온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의 수치일지 모른다. 10~50년의 잠복기를 감안하면 ‘이상 없음’ 판정을 받은 이들 중에서도 ‘미래의 피해자’가 상당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석면공장 인근 주민 무료검진 문의
양산부산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 | 055-360-3770~2
부산광역시 환경보전과 석면담당 | 051-888-4951


최종 집계된 숫자는
1,625,445
무려 160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부산시민 2명 중 1명은
석면에 노출된 적이 있는
‘잠재적 피해자’이다


[부산 석면공장 22곳 주민피해조사 현황(14년 6월 현재)]
※ 클릭하면 상세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부산인구 340만...
그 중  160만...
당신도?!
제작진
취재 | 박태우·김경희·이대진·박진숙 기자
자료 | 윤여진·최혜규 기자
지도 | 노인호 기자
영상 | 김정민·박재상·박정욱 VJ
도움 | 서용교 국회의원, 이성숙 전 시의원, 부경대 IT융합응용공학과 송하주 교수팀(조현철 연구원), 석면피해자와 가족협회,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원회
         양산부산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 부산광역시, 부산시교육청
웹제작 | JJworx